참고자료

간증문 - 1996년 비전트립을 마치고

말씀따라가기 2021. 4. 21. 13:55

 

1996년 비전트립을 마치고

 

준비도 제대로 못하고 떠난 여행이라 그리 많이 기대하지 않았는데, 큰 것을 얻고 돌아 왔습니다.

세계는 제가 생각한 것 보다 심각했습니다.

복음이 없어서 고통받고,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저는 너무나 배부른 신앙생활을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 불만을 터뜨리며 한가하게 슬럼프에 빠져 있는 동안 그곳 성도들은 복음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걸며 피눈물 나는 투쟁을 해 왔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과 가족에게 버림받은 체 앙상한 바위굴에서 고독하게 인생을 마치며 복음을 지킨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거대한 카타쿰에서 햇빛도 보지 못한 체 수세기를 숨어서 신앙을 유지시켜야 했던 그곳의 성도들의 흔적은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침묵의 메시지 였습니다.

그 고독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곳은 그리스도인의 핏값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만난 독일 선교사님의 눈물 글썽한 눈망울이 생각납니다.

빈민촌에서 빈대에게 물려가며 8년간을 그들과 생활하며 한 명의 영혼을 기다려 왔지만 결국 그는 한 명의 영혼도 얻지 못한 체 그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추방을 당한 것인지 쫓겨난 것인지 그 사연은 알 수 없으나 아직도 한 영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의 눈물은 그의 안타까움을 대신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한 영혼... 너무 흔하게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그러나 그곳에서는 눈을 뜨고 찾아도 찾을 수 없는 너무도 희귀한 존재였습니다.

주님이 한 영혼을 왜그리 귀히 여기는지 그 곳에서는 그 이유를 피부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 아직도 성도들의 핏값이 존재하고 있건만 우리는 복음에 배불러서 너무나 나태하고 안일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배부르고 비대해진 후에 우리는 지금의 영국의 모습이 될지도 모릅니다.

교회가 변하여 창고가 되고, 교회의 십자가 자리에 모슬림의 초승달이 걸려 많은 사람을 멸망으로 몰고 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감사할 줄 모르고 줄줄 모르며, 그저 먹기만 할 때 우리의 모습은 그렇게 변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집트의 시내산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바위산... 풀 한 포기, 이끼 하나 찾을 수 없는 죽음의 산.... 더이상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불모의 산... 소망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의 산.... 그것은 지칠 대로 지쳐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저 자신의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툭 건드리면 부서질 듯한 앙상한 가시덤불은 소망을 다 잃고 진토에 붙은 먼지처럼 남아 있는 저의 자아와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곳으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늙고 힘도 없는 80세된 모세를 그곳에 부르셨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며 도망쳐온 엘리야를 먹이고 새롭게 하신 곳도 바로 그 산이었습니다.

 

저는 그 하나님을 그 산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도 동일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아직은 끝이 아니라는 것과, 아직도 저를 필요로 하고 계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인간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더이상 소망을 가질 수 없을 때, 그때가 바로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시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금 저는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표정을 마음에 담아 봅니다.

전쟁 전야처럼 긴장되어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

사방이 열국으로 둘러 쌓여 언제 어떻게 공격을 받을지.. 늘 긴장하며 살아야 하는 그들의 표정은 굳고 여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만들기 위해 열국을 가시로 주셨건만 그들은 아직도 그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선민이면서도 선민의 특권을 누리지 못한 체 하루하루 긴장과 억압 속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2000년 전의 모습과 현대의 모습이 공존하고 있는 그 거리, 현대와 과거의 공존 속에서 고집스럽게 아직도 강도 바라바를 택하고 있는 그들의 외침은 처절하기까지 합니다.

통곡의 벽 틈틈이에 꽂혀 있는 눈물겨운 사연들... 그토록 하나님을 찾고, 기다리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들은 눈이 있으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되 듣지 못하고, 고집과 자만심으로 아직도 그들의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너무도 불쌍하고, 안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통곡의 벽에서 하나님을 향해 울고 있는 그들을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할 의무를 안고 왔습니다.

 

반면 인간적으로는 너무나 친근하고, 정이 가는 이집트 사람들도 생각납니다.

인간적 친절과 따뜻함 때문에 도저히 그들을 미워할 수 없기에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조상 대대로 이어온 우상숭배와 혼신의 힘을 다해 이어온 죽음의 문화로 저주받은 그들이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그들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쫓겨난 이스마엘에게 물을 주며, 갈 길을 인도하셨던 그 하나님이 기다리고 있건만, 그들은 아직도 알라를 외치고 있습니다.

하루 5번 기도하며, 장시간 금식하며, 착한 일로 신에게 가보려고 발버둥치지만, 그들에게 구원은 없습니다. 헛된 것을 향해 생애 전체를 걸고 있는 그들에게 우리의 기도가 필요함을 알았습니다.

 

98%의 모슬림을 자랑하는 터키도 생각납니다.

그 곳엔 날라리 모슬림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가능성이 보입니다.

금방이라도 기독교화 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안고 왔습니다.

 

로마의 화려한 거리와 사치스런 사람들의 표정이 생각나고, 영국 성도의 눈물 젖은 눈망울이 동시에 생각납니다.

복음으로 배불러서 이제는 스스로 그리스도를 버리고 마는 영국사람들...

많은 교회가 창고로 변하고, 모슬림으로 바뀌어 버린 그곳에 그래도 아직까지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들은 무척 고독했습니다.

영적 갈급함에 허덕이지만, 교회가 그 갈급함을 채워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제가 그립지만, 교제의 대상이 없고, 말씀이 그립지만 말씀을 채워줄 일군이 없습니다.

기도하고 싶지만, 기도의 동지가 없고, 전도하고 싶지만 동행인이 없습니다.

그만큼 그리스도인이 희귀하다는 것이겠지요.

말도 통하지 않는 우리를 붙잡고, 단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그들의 한을 토하고 싶어하는 그 표정을 보며 이제는 우리의 것을 굶주린 해외의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입을 열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를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의 Vision trip은 너무도 값지고 놀라운 도전이었습니다.

함께한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계속해서 만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