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자기를 세우나
대언하는 자는 교회를 세우느니라 (고전14;4-하단박스).
[개역, 개정은 방언이라 했고,
흠정역, 권위역은 ‘알지 못하는 언어’라 했습니다.]
1. 자기를 세우는 방언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자기를 세웁니다 (고전14:4).
자기를 세우는 방언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므로 이런 방언은 은사가 아닙니다.
알지 못하는 언어를 말하는 자는 ‘영 안에서 (in the spirit)’ 신비를 말하는데 (고전14:2),
여기서 ‘영’은 성령이 아니라 자기의 영이며,
그의 혼조차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각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고전14:14).
고린도교회에는 ‘알지 못하는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교회에서 잠잠하든지 통역을 세우라고 했습니다 (고전14:27-28).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면 미쳤다고 판단받고 (고전14:23),
야만인이 되는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고전14:11).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면 자기 자신을 세우게 되고 (고전14:4),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므로 유익이 없습니다 (고전14:9).
2. 알지 못하는 언어 : [unknown] tongue
KJV 성경에는 방언 앞에 [unknown]이란 단어를 넣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고전14:2, 4, 13, 14. 19, 27).
고린도전서의 방언은 ‘알지 못하는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KJV 성경은 원본에 없는, 또 다른 번역들에 없는 [unknown] 이란 단어를 넣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이었지만,
고린도서에 나온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기에 구분한 것입니다.
이 방언은 “아무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표현했고 (고전14:2),
통역의 필요성까지 언급했습니다 (고전14:5).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유익이 없고 (고전14:6),
허공에 말하는 것이기에 (고전14:9).
이 방언은 [unknown] tongue입니다.
3. 방언의 필요성
성경에 나온 방언은 ‘언어’, 즉 외국어입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 사용하는 고유의 언어 곧 자국어이며 모국어를 의미합니다.
반면 이교도들은 알지못하는 방언을 사용합니다.
신약 성경에 방언이 처음 언급된 구절은 막16:17입니다.
영어로는 new tongues이고,
‘새 언어’로 번역한 성경도 있고 (흠정역, 권위역 등)
‘방언’이라 번역한 성경도 있습니다 (개역, 개정, 한킹 등).
주님은 열한 제자들에게 방언 (새 언어들)을 주셨습니다 (막16:17).
뿐만 아니라 뱀을 집어 올리며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들이 낫게 되는 표적을 주셨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라고 명하시면서 주신 것입니다 (막16:15).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할 때 이런 표적들이 따르게 되므로,
이 표적들을 ‘사도의 표적’이라 합니다.
사도들은 어떤 나라, 어떤 민족의 사람을 만나도 상대방이 알아듣는 언어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언어가 다른 어떤 사람을 만나도 방언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사도의 표적은 교회 생성기에 교회를 세우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사도들은 표적의 요구에 응하지 못하면 가짜로 판명되므로,
거짓 사도를 분별하기 위해 표적이 필요했습니다.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임을 증명하기 위해.
또, 사도를 입증하기 위해 유대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표적을 받은 사도들은 죽었고,
현 시대에는 사도가 없으므로 사도를 입증할 표적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4. 천사의 언어 (방언)
성경에는 천사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마리아, 요셉, 바울, 베드로, 아브라함, 사라, 롯, 마노아, 다니엘, 요한 등은 천사의 말을 들었지만 통역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현시대에는 거짓 표적, 거짓 방언, 거짓 신유 등을 행하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천사의 방언이라고 속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모방하여 인위적으로 성령을 흉내내는 일은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공부하는 것보다
뜨거운 체험을 더 선호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방언의 은사입니다.
방언을 성령의 임재로 생각하고,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신비스럽게 다 깨닫게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는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요16:13),
말씀을 따라 일하십니다.
성령이 증거하는 것은 말씀이며,
말씀대로 이루어 집니다.
[관련구절]
- 알지 못하는 언어
* 고전14:4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자기를 세우나 대언하는 자는 교회를 세우느니라.
- 아무도 이해 못하는 말
* 고전14:2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말하나니 아무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나 그가 영 안에서 신비들을 말하느니라.
- 이해의 열매를 맺지 못함
* 고전14:14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기도하면 나의 영은 기도하거니와 나의 이해하는 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느니라.
- 통역이 필요함
* 고전14:27 만일 어떤 사람이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순서대로 하고 한 사람은 통역할 것이요,
/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그는 교회 안에서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니라.
- 미쳤다고 판단 받음
* 고전14: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여 모두 타언어들로 말하면 배우지 못한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가 미쳤다고 하지 아니하겠느냐?
- 야만이 됨
* 고전14: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말하는 자에게 야만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인이 되리라.
- 허공에 말하는 것
* 고전14:9 이와 마찬가지로 너희가 혀로 알아듣기 쉬운 말들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한 것을 어찌 알리요? 너희가 허공에다 말하리라.
- 알아듣는 다섯 마디가 낫다
* 고전14:19 그러나 교회에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만 마디 말을 하느니 차라리 이해하면서 다섯 마디 말을 하여 내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도 가르치리라.
- 순서대로
* 고전14:27 만일 어떤 사람이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순서대로 하고 한 사람은 통역할 것이요,
- 대언이 더 낫다
* 고전14:5-6 나는 너희가 다 타언어들로 말하기를 원하되 특별히 대언하기를 원하노니 타언어들로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가 세움을 받게 하지 아니하면 대언하는 자가 그보다 더 크니라.
/ 이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가서 타언어들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대언이나 교리로 너희에게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슨 유익을 끼치리요?
-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
* 막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내 이름으로 그들이 마귀들을 내쫓으며 새 언어들로 말하며
- 복음을 선포하라
* 막16:15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 진리의 성령
* 요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경비교] 고전14:4
* an [unknown] tongue
(알지 못하는 언어)
: a tongue
(언어)
KJV 성경은 [unknown]이란 단어를 넣어 ‘알지 못하는 언어’라 증거합니다.
고린도서에 나온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기에 구분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4:4 알지 못하는 언어
|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자기를 세우나 대언하는 자는 교회를 세우느니라. (흠정역)
알지 못하는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자신을 세우나 예언하는 사람은 교회를 세우느니라. (한킹)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자기를 세우나, 말씀 전달하는 자는 교회를 세운다. (한국어권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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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개역)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개정)
이상한 언어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도울 뿐이지만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사람은 교회에 도움을 줍니다. (공동번역)
|
He that speaketh in an [unknown] tongue edifieth himself; but he that prophesieth edifieth the church. (KJV)
He who speaks in a tongue edifies himself, but he who prophesies edifies the church. (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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